게임 세계관 기획 · 작업 기록
「성경 & 열두 제자의 모험」 세계관의 씨앗을 찾고 확정한 과정
1페이지 시놉시스가 완성되기까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겼는지를 순서대로 적은 작업 기록이다. 완성된 시놉시스 본문은 별도 문서에 있다.
| 주제 | 성경 & 열두 제자의 모험 — 게임 세계관 기획서 |
| 분량 | A4 용지 기준 1페이지 |
| 형식 | 텍스트로만 작성. 이미지 첨부 불가 |
소재를 더하기 전에 쓸모없는 것을 먼저 걷어내는 감산법으로 진행한다. 아래는 논의 과정에서 하나씩 세워진 원칙이다.
마지막 원칙은 비교종교학 안에 이미 정식 방법론으로 존재한다. 루돌프 오토는 『성스러운 것』(1917)에서 종교의 핵심을 교리 이전의 감정 질(質)로 보았고— 누미노제, 떨게 하면서 동시에 매혹하는 것 — 클리퍼드 기어츠는 종교를 “강력하고 지속적인 정조(mood)와 동기를 확립하는 상징 체계”로 정의했다. 기획서에서 근거로 인용할 수 있다.
이 작업에서 기독교의 특징은 찬란한 상징과 구원의 약속만이 아니다. 그 밝은 외형 아래에는 죄, 희생, 심판, 갚을 수 없는 은혜가 남기는 중압감과 어두운 감정이 함께 있다. 세계관의 출발점은 바로 그 어긋남이다.
버린 것을 적어 두는 이유는 제출본을 쓸 때 같은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다.
| 폐기한 후보 | 사유 |
|---|---|
| 유전되는 유죄 (서방식 원죄) | 현대의 도덕 직관이 가장 강하게 거부하는 지점. 물려받은 조건(계급·가난·부모)은 수용되지만 물려받은 책임은 거부된다. 참고로 동방정교의 해석 — 물려받은 죽음과 타락의 상태 — 은 이 절단선을 통과한다. |
| 육체와 성에 대한 죄 관념 | 세계관의 무게가 아니라 촌스러움으로 읽힌다. |
| 믿는 자만 구원 (배타성) | 자의적이고 부족주의적으로 읽혀 세계 전체의 격을 떨어뜨린다. |
| 순종 자체가 미덕 | 현대 서사문법은 정확히 반대 위에 서 있다. 플레이어가 탈출해야 할 디스토피아로 읽힌다. |
| 고난에는 뜻이 있다 (신정론) | 위로가 아니라 가스라이팅으로 수용된다. 신학 내부에서도 사실상 폐기된 논변. |
| 단 한 번 · 되돌릴 수 없음 | 사실의 진술일 뿐 질문을 낳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의 기본 조건이라 따로 선언할 것이 없다. |
| 내면까지 도달하는 시선 | 관계처럼 보이지만 일방향이라 실은 조건이다. 감시 디스토피아는 포화 상태. |
| 대리 · 선택 · 중보 · 이름 붙임 | 전부 개념이라 먼저 설명해야 작동한다. 뼈대는 옳아도 끌리지 않는다. |
| 신과 인간 사이의 12개 언약 | 씨앗이 정해지기 전에 나온 구조물. 보류. |
| 『공포와 전율』의 아브라함 | 교리를 자기 이득이나 도덕적 우월의 증명 도구로 쓰는 빌런 유형. 편리하고 단순한 활용이며, 무엇보다 세계관이 아니라 내러티브 층위의 소재다. |
갚을 수 없는 빚이 있는데, 채권자가 나를 사랑한다.
누군가가 내 빚을 대신 갚아 주었지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그 은혜에서 벗어날 수도, 갚을 수도 없다.
보통의 빚은 도망칠 수 있다. 파산할 수도 있고, 떼먹고 미워하며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빚은 채권자가 먼저 갚아버렸다. 그래서 채무자에게는 갚는다는 존엄조차 남지 않는다. 저항하면 배은망덕이 되고, 감사하면 영원히 아래에 남는다.
이 문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여러 경계 위에 동시에 서 있고, 어느 쪽으로도 판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 경계 | 내용 |
|---|---|
| 채권자 / 증여자 | 빚은 교환의 언어다 — 등가, 의무, 청산. 사랑은 증여의 언어다 — 되돌려받지 않음. 한 사람이 두 자리에 동시에 선다. |
| 사랑 / 지배 | 채무자는 자기가 사랑받는지 소유당하는지 안에서는 끝내 판정할 수 없다. |
| 해방 / 구속 | 빚에서 풀려나는 것이 곧 묶이는 것이 된다. |
| 은혜 / 모욕 | 갚을 수 없는 것을 받는 일은 높이는 동시에 낮춘다. |
씨앗의 성격에서 자동으로 따라 나오는 금지 사항이다. 취향이 아니라 필연이다.
네 입장은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실제 교회사가 정확히 이 빚을 두고 갈라졌다. 전부 실존했고, 전부 진지했고, 전부 졌다. 진 쪽의 논리가 문서로 남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역·제도·잔존 문헌·아직 숨어 있는 잔당이 자동으로 따라 나온다.
| 세력 | 역사적 주장 | 빚에 대한 입장 |
|---|---|---|
| 펠라기우스파 | 인간은 은총 없이도 자기 의지로 죄 없이 살 수 있다. 5세기에 정죄됨. | 빚은 내 힘으로 갚을 수 있다. |
| 마르키온파 | 구약의 창조주와 예수의 아버지는 다른 신이다. 2세기. | 저 채권자는 우리를 사랑하는 그분이 아니다. |
| 도나투스파 | 배교한 성직자가 집전한 성사는 무효다. 4세기 북아프리카. | 탕감은 취소될 수 있다. |
| 영지주의 | 물질세계는 열등한 신의 작품이며 구원은 앎(그노시스)으로 온다. | 애초에 이 장부가 잘못됐다. 빚은 없었다. |
명칭은 임시다. 12는 상징수이므로 어떻게 다루어도 도식은 남는다. 억지로 비대칭을 만들면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작위가 되며, 사람들은 오히려 이 정연한 분할에서 안정감과 품위를 느낀다.
먼저 알아 둘 것. 열둘 중 셋은 성경에 사실상 이름밖에 없다 — 작은 야고보, 다대오, 젤로테스. 약점이 아니라 재해석의 여지가 가장 큰 자리다.
빚을 인정하고 제 힘으로 갚으려 한다. 실패하고, 또 시도한다. 펠라기우스 쪽이며 “자력으로는 불가능함”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증거를 요구한다. 영지주의와 인접한 진영이며, 앎으로 도달하려는 쪽이다.
갚으려 하지도 따지지도 않고 남아 있다. 은총 수용의 극.
프레임 자체에서 벗어나거나 뒤엎으려 한다. 도망자 계열.
각 인물마다 다른 진영으로 미끄러진 사건이 성경에 하나씩 있다. 베드로는 부인하는 순간 ④가 되고, 도마는 손을 만지는 순간 ③이 되고, 유다는 뉘우쳐 은을 던지는 순간 ①이 된다. 배치는 하되 이 미끄러짐을 남겨두면 진영은 감옥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된다.
입장은 소유하는 상태가 아니라 통과하는 사건이다. 베드로 한 사람이 나흘 만에 네 입장을 전부 지나간다.
열둘인데 이름이 열둘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름이 셋이고, 어떤 이름은 사람이 셋이다. 원칙은 하나 — 한 사람에 하나의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이 그 사람의 무엇을 말하는가.
| 확정 | 버린 표기 | 뜻 · 근거 |
|---|---|---|
| 베드로 | 시몬, 게바 | 반석. 아람어 케파 → 그리스어 페트로스. 예수가 붙인 이름 |
| 안드레 | — | 그리스식 이름. 베드로의 형제 |
| 요한 | — | 야훼는 자비로우시다 |
| 큰 야고보 | 세베대의 아들 | 요한의 형제. 둘이 합쳐 보아너게, 우레의 아들 |
| 작은 야고보 | 알패오의 아들 | 막 15:40의 “작은 야고보”. 전통적 구분이며 확정은 아니다. 그 애매함이 이 인물에 어울린다 |
| 빌립 | — | 그리스식 이름. 말(馬)을 사랑하는 자 |
| 바돌로매 | 나다나엘 | 바르-톨마이, 곧 “톨마이의 아들”. 개인명이 아니라 부칭이다. 본명 나다나엘은 요한복음에만 남았다 |
| 도마 | 디두모 | 아람어 트오마 = 쌍둥이. 이것도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다 |
| 마태 | 레위 | 야훼의 선물. 세리 |
| 젤로테스 | 시몬, 열심당, 카나나이오스 | 그리스어 ζηλωτής. 누가·사도행전의 표기. 본명 시몬은 베드로가 가져갔다 |
| 다대오 | 야고보의 아들 유다 | 가룟과 겹치지 않도록 다대오로 고정 |
| 가룟 유다 | — | 가룟은 “그리욧 사람”설이 유력. 시카리 어원설도 있으나 미확정 |
언어층 원칙 — 익숙한 관용역을 기본으로 두고, 이름이 겹치거나 비어 있는 자리에만 원어를 쓴다. 전면 그리스어화(페트로스·디두모·젤로테스)는 낯설고 멋있지만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젤로테스 하나만 튀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로 읽힌다.
1세기 유대 남성이 쓰던 이름의 풀이 극히 좁았다. 시몬, 요셉, 유다, 요한 몇 개가 인구의 상당 부분을 덮었다. 이름만으로는 사람을 특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별명·출신지·아버지 이름이 필수 장치가 되었다. 시몬 바요나, 가룟 유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 뒤에 붙은 것이 전부 꼬리표다.
복음서 저자들은 아람어 별명 옆에 그리스어 번역을 계속 붙여 놓는다. 통역하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열둘은 번역되어 전해진 사람들이다. 실제로 불린 이름과 기록에 남은 이름이 다르고, 그 사이에 옮긴 자의 손이 끼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에 남은 자국조차 판정 불가능해야 한다는 제약과 맞물린다. 기록이 곧 번역이라면, 원문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세계에서 별명은 본명을 잡아먹는다. 증거는 멀리 있지 않다.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는데, 이천 년이 지난 지금 그를 시몬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반석이 사람을 통째로 대체했다.
같은 일이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다.
| 인물 | 소멸의 방식 |
|---|---|
| 젤로테스 | 별명에 삼켜졌다. 열심만 남고 사람이 지워진다. 출신도 아버지도 남지 않았다 |
| 바돌로매 | 아버지에게 삼켜졌다. 그를 부르는 이름이 “누구의 아들”뿐이다. 본명은 한 복음서에만 겨우 남았다 |
| 작은 야고보 | 기록에 삼켜졌다. 이름만 남고 행적이 없다. “작은”이라는 꼬리표조차 무엇이 작은지 알 수 없다 |
예수가 관계를 맺을 때 하는 일도 같은 계열이다. 이름을 바꾼다. 시몬은 반석이 되고, 야고보와 요한은 우레의 아들이 된다. 남이 준 이름이 사람을 규정하는 구조는 열둘과 억지 없이 붙는다.
열두 제자를 성경 내용에 기반해 재배치하는 것은 창작이 아니라 조사의 결과로 보일 수 있다.
정경의 명단 자체가 이미 갈라져 있다. 시몬은 로마에 맞선 무장 저항 세력이고 마태는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던 부역자다. 무장 저항군과 부역자가 한 파티에 있다. 이것은 설정이 아니라 명단에 그냥 적혀 있는 사실이다.
아직 확정이 아니라 초안이다. 다만 이 뼈대가 앞의 미해결 과제 하나를 답한다 — 빚은 부재로 나타난다.
최초의 인간은 만물을 다스리기 위해 기적을 대행했다. 낙원에서 쫓겨난 뒤로는 다스릴 만물이 없다. 권한만 돌아오고 직무는 돌아오지 않았다.
값도 문제를 키운다. 그 힘은 한 사람의 목숨으로 지불되었다. 그러면 어떤 사용처가 그 값에 걸맞은가. 병자를 고치면 되는가, 몇 명이면 되는가. 무한한 대가로 산 것을 유한한 일에 쓸 수 있는가 —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쓸 때마다 틀린 것 같다.
열둘이 행하는 것의 이름. ἐξουσία (exousia), 복수형 엑수시아이(ἐξουσίαι).
| 원어 | 뜻 | 이 세계에서 |
|---|---|---|
| ἐξουσία 엑수시아 | 위임된 권한, 허가. 어원은 ἔξεστιν — “허용되어 있다”. 문자 그대로 허락에서 나온 것이다 | 열둘이 받은 것. 힘이 아니라 허락이다 |
| δύναμις 뒤나미스 | 능력, 힘 그 자체 | 인간에게는 없다. 엑수시아를 통해 빌려 쓸 뿐 |
| σημεῖον 세메이온 | 표적. 눈에 보이는 결과 | 엑수시아가 행사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 |
마태 10:1에서 예수가 열둘에게 준 것이 정확히 이 엑수시아다. 그리고 같은 단어가 신약에서 영적 존재의 계급을 가리키기도 한다 — “정사와 권세”(엡 6:12)의 권세가 엑수시아다. 한 단어가 인간이 받은 허가와 그 위의 존재들을 동시에 부른다. 세계관에서 활용할 여지가 있다.
기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둘은 다른 물건이다.
| 마법 | 기적 | |
|---|---|---|
| 소유 | 시전자의 것. 배우고 숙련된다 | 남의 것. 요청하고 허락받아 대행한다 — 엑수시아 |
| 재현성 | 같은 조건이면 같은 결과. 그래서 학문이 된다 | 재현되지 않는다. 같은 기도가 한 번은 되고 한 번은 안 된다 |
| 실패 | 원인을 안다 — 자원 부족, 시전 실수 | 원인을 모른다. 믿음이 부족했나, 청이 틀렸나, 듣지 않으셨나, 애초에 권한이 없었나 |
| 비용 | 시전자가 지불한다 | 이미 남이 지불했다. 무료처럼 보이지만 무료가 아니다 |
| 거절 | 없다. 조건이 맞으면 발동한다 | 있다. 인격이 개입한다. 시스템이 아니라 관계다 |
실패가 정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판정 불가능성이 설정이 아니라 시스템 층위로 내려온다. 그리고 성장 곡선도 사라진다 — 오르내리는 것은 숙련도가 아니라 믿음이고, 믿음은 훈련으로 오르지 않는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 가라앉은 것이 정확히 그것이다. 진영이 미끄러지듯 능력도 미끄러진다. 같은 원리다.
부수 효과 — 이단 세력도 마법을 못 쓴다. 넷 모두 같은 기적 하나를 두고 다툰다. 대안 체계가 없으므로 싸움은 “누가 참된 권한을 가졌는가”가 된다. 실제 교회사의 쟁점과 같다. 도나투스파 논쟁이 바로 그것이었다 — 배교한 사제가 집전한 성사는 유효한가, 권한은 사람에게 붙는가 직분에 붙는가.
| 태도 | 기적을 어디에 쓰는가 |
|---|---|
| ① 갚으려는 자 | 갚는 데 쓴다. 기적으로 빚을 상쇄하려 한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
| ② 장부를 보자는 자 | 확인하는 데 쓴다. 기적이 진짜인지, 권한이 실재하는지 시험한다 |
| ③ 그냥 받은 자 | 쓰지 않는다. 혹은 자기를 위해서는 결코 쓰지 않는다 |
| ④ 장부를 떠난 자 | 값을 매긴다. 팔거나, 자기 것으로 쓴다 |
세력 체계와 기적 체계가 한 몸이 된다. A4 한 장에서 세계관과 게임성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베드로가 권능으로 사람을 죽인 일을 성경이 규탄하지 않는 것은, 시대적 관점이 본문 곳곳에 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열둘이 활동하던 시기에 교리가 완비되어 모든 사건의 시비를 재단하는 것은 무리였다. 예루살렘 공의회가 할례 문제 하나로 열렸다는 사실 자체가 증거다 행 15 — 기본적인 것조차 정해져 있지 않았다.
다만 미숙함만은 아니다. 히브리 서사는 원래 판정하지 않는 문체를 쓴다. 사사기의 잔혹한 이야기들, 야곱의 속임수, 다윗의 범죄 — 서술만 하고 평가를 달지 않는 대목이 많다.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미메시스』 첫 장에서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를 호메로스와 비교하며, 히브리 서사는 배경이 어둠에 잠겨 있고(fraught with background) 설명을 거부한다고 했다. 그 침묵이 독자에게 해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정하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것은 원전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의 문체를 계승하는 것이다. 교리적으로 말끔하게 정리된 세계 쪽이 오히려 성경에서 멀다.
세계관에서 이야기로 넘어가려면 두 사건이 맞물려야 한다. 하나는 모티브가 될 큰 사건, 하나는 열둘 중 누군가가 진 비밀. 사건이 비밀을 드러내는 순서면 평범하다. 비밀이 그 사건의 원인이었음이 드러나야 통로가 생긴다.
엑수시아는 한 종류가 아니다. 성경이 이 단어를 두 번, 다른 등급으로 쓴다.
| 내용 | 때 | |
|---|---|---|
| 첫 번째 |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칠 권한 마 10:1 | 지금. 열둘에게 주어졌다 |
| 두 번째 | 생명나무에 나아갈 권한 계 22:14 | 종말에.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
엑수시아는 영생이 아니다. 생명나무에 다가갈 자격이지 열매를 먹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창세기 3:24를 보면 생명나무는 파괴되지 않았다. 그룹과 화염검이 그 길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 나무는 여전히 있고, 지켜지고 있고, 그러므로 뚫릴 수 있다. 계시록 22:2에서 그 나무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다.
열둘 중 하나가 아직 오지 않은 두 번째 엑수시아를 미리 가졌다.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받은 것인지 훔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모호함이 설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는 점이 중요하다. 때가 아닌데 가졌기 때문이다. 예정보다 일찍 받는 것과 앞질러 취하는 것은 바깥에서 구별되지 않는다.
| 인물 | 근거 |
|---|---|
| 도마 | 도마복음의 첫 줄이 “살아 있는 예수가 말하고 디두모 유다 도마가 기록한 비밀한 말씀”이다. 문서가 스스로 비밀 전승이라 선언한다. 그리고 이름을 보라 — 디두모(그리스어 쌍둥이)와 도마(아람어 쌍둥이)가 앞뒤로 붙어 있고, 사이에 낀 진짜 이름은 유다다. 고대 시리아 전승은 그가 누구의 쌍둥이인지까지 말한다 |
| 요한 | 그가 죽지 않으리라는 소문이 돌았고 본문이 그것을 직접 부인한다 요 21:20–23. 부인한다는 것은 소문이 실재했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생명나무를 보고 기록한 자가 요한이며 계 21–22, 그는 ③ 그냥 받은 자 진영에 있다 — 가장 조용히 받은 자가 가장 많이 받았다 |
| 맛디아 | 제비뽑기로 유다의 자리를 채웠고 그 뒤 성경에 다시 나오지 않는다 행 1:26. 열한 명이 정원을 급히 채운 것이 성급했다는 전통적 해석이 있다. 토대의 결함 |
| 이름만 남은 셋 | 작은 야고보, 다대오, 젤로테스. 기록이 없으므로 어떤 비밀을 넣어도 본문과 충돌하지 않는다 |
경고 — 증거가 요한 한 사람에게 몰려 있다. 너무 잘 맞아서 위험하다. 그러니 오히려 함정으로 쓰는 편이 낫다. 증거를 요한에게 몰아두고(실제로 성경이 그렇게 몰아두었다) 끝까지 판정하지 않는 것. 부인은 증거가 아니지만 무죄의 증거도 아니다.
함정 먼저. “불멸자가 역사의 모든 순간에 있었다”는 이미 닳은 구조다(하이랜더, 포레스트 검프). 그가 있었다로 가면 값이 떨어진다. 그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 사건 | 내용 |
|---|---|
| 열둘의 흩어짐과 죽음 44년~ | 성경에 기록된 사도의 순교는 딱 하나다 — 헤롯이 칼로 죽인 세베대의 야고보 행 12:2. 나머지는 전부 전승이다. 그리고 그 전승 안에 결정적인 것이 있다 — 요한만 순교하지 않았다. 에베소에서 늙어 죽었다고 전해진다. 어긋남도 있다. 행 8:1은 큰 박해로 사람들이 흩어졌으나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다고 적는다. 사도들은 남았다. 그런데 전승은 그들이 인도까지 갔다고 한다 |
| 성전 파괴 70년 | 회계 사건. 속죄가 이루어지던 장소, 빚을 처리하던 창구가 물리적으로 사라진다. 예수가 그 파괴를 미리 말했고 막 13:1–2, 자기 몸을 성전에 빗대기도 했다 요 2:19. 비밀의 결과라기보다 비밀이 자랄 조건이다 — 장부를 확인할 곳이 없어진다 |
| 넘겨준 자들 303–305년 |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의 요구가 하필 문서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응한 자를 트라디토르라 불렀고, 그 단어에서 영어 traitor가 나왔다. 이 사건이 도나투스파를 만든다 — 이미 세워둔 세력이 사건에서 태어난다. 넘겨진 문서 더미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죽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303년에도 살아 있다 |
| 니케아 공의회 325년 | 교리가 표결과 황제의 힘으로 확정된다. 판정 기구가 태어난 날. 여기 논리가 있다 — 판정 기구는 판정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생긴다. 모든 것이 명백하면 공의회가 필요 없다. 죽지 않는 자가 실재한다면, 교회가 판정을 시작해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일 수 있다 |
| 바르 코크바 반란 132–135년 | 랍비 아키바가 바르 코크바를 메시아로 선포했고 그는 처참하게 졌다. 권한을 자칭한 자가 틀렸던 사건. 기독교인들이 그를 따르기를 거부한 것이 결정적 결별이 됐다 |
| 오순절 행 2 | 엑수시아가 내려오는 순간. 그런데 목격자들의 첫 반응이 “새 술에 취하였다”였다 행 2:13. 판정 불가능성이 사건의 첫 장면에 이미 있다 |
장부가 불타고(70) → 문서가 넘어가고(303) → 판정 기구가 세워진다(325). 그 사이 어딘가에 죽지 않는 자가 있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엘로힘·여호와·파르메니데스·범신론을 두고 옆길로 샜으나 한 줄이 남았다 — 세계가 곧 신이면 빚을 질 상대가 없다. 갚을 수 없는 빚은 채권자가 나와 다른 존재일 때만 성립한다. 첫날 잡았던 “신은 세계의 일부가 아니다”가 씨앗을 떠받치고 있었다. (성경 원어와 신 관념에 관한 내용은 출처색인 문서로 옮겼다.)
최종 시놉시스에 반영한 설계 결정이다. 용어, 사건, 인물 배치, 기적의 작동 원리를 이 단계에서 확정했다.
| 항목 | 확정 |
|---|---|
| 용어 | 엑수시아. 발음이 불편하지만 유지 — 읽는 사람이 검색하면 마태 10:1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 이 문서의 가장 강한 신호다. 다듬으면 매끄러움을 얻고 근거를 잃는다 |
| 제목 | 엑수시아 — 갚을 수 없는 빚. 용어와 논지를 한 줄에 둘 다 세운다 |
| 사건 | 성전 파괴. 내부 분열이 빈틈을 만들고 외부 세력이 그 틈으로 들어온다. 사건이 밖에서 오지 않고 안에서 자란다 |
| 비밀을 진 자 | 특정하지 않음. 누군가 생명의 과실을 먼저 먹었다는 사실만 남고, 받은 것인지 훔친 것인지 끝내 판정되지 않는다 |
| 플레이어 | 이름 없는 자. 불타는 성전 한가운데에서 되살아나며, 문서의 시제가 그 지점에서 과거에서 현재로 바뀐다 — 신화가 끝나고 지금 여기로 착지한다 |
| 네 분파 | 인물을 하나씩 배치 — 젤로테스 · 마태 · 도마 · 다대오 |
| 기적의 성질 | 믿음에 비례. 의심하는 자의 기도에는 아무것도 내리지 않는다. 판정 불가능성이 설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내려온다 |
두 축이 성격이 다르다. 앞의 축은 전제가 같아서 싸우고, 뒤의 축은 근거가 같아서 갈라진다. 앞의 둘은 같은 자리에 남아 다투고, 뒤의 둘은 각자 흩어진다.
| 축 | 대립 | 쟁점 |
|---|---|---|
| 갚음은 누구의 일인가 | 젤로테스 ↔ 마태 | 의지 / 법칙. 둘 다 “빚은 갚아야 한다”에 동의하므로 가장 가까운 둘이 가장 격렬하게 싸운다 |
| 사면은 확실한가 | 도마 ↔ 다대오 | 모른다·멈춘다 / 확실하다·떠난다. 같은 잣대에서 정반대 결론이 나온다 |
그리고 네 분파가 모두 자기에게 유리하게 그를 해석한다. 그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름도 기억도 목적도 없으니 해석을 거부할 능력이 없다. 판정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물이 나타났는데, 그 증거물이 자기가 무엇의 증거인지 모른다.
| 분파 | 그를 뭐라 부르는가 | 드러나는 결핍 |
|---|---|---|
| 젤로테스 | 무기 — 쓰는 것 | 힘이 모자란다 |
| 마태 | 증명 — 내세우는 것 | 질서를 입증하지 못했다 |
| 도마 | 표본 — 들여다보는 것 | 앎이 없다 |
| 다대오 | 상징 — 떠받드는 것 | 갈 길이 아직 없다 |
도구 → 논거 → 관찰물 → 우상. 마지막이 가장 대접받는 자리처럼 보이지만 본인이 가장 완전히 지워지는 자리다. 무기는 쓰이기라도 하지만, 상징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가 아예 필요 없다. 이름 없는 자에게 이보다 잔인한 대접이 없다.
제출한 시놉시스 전문은 이 작업 기록에서 분리했습니다. 두 번째 문서에서 완성된 1페이지 원고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장에 들어가지 않아 보류한 것들. 세계를 넓힐 때 꺼내 쓸 수 있다.
제출본과 무관한 확장 메모. 확정된 것이 아니라 논의만 해둔 것이다.
리니지식 과금 동기는 경쟁이다 — 남보다 강해져라. 그런데 이 세계의 동기는 부채다 — 갚아라, 그런데 갚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자력으로 갚겠다고 나서는 자들이 젤로테스 진영, 즉 틀린 길을 가는 쪽이다. 페이투윈을 붙이면 돈을 쓸수록 세계가 틀렸다고 말하는 구조가 된다.
억지로 붙일 방법은 있다 — 돈으로 사는 것은 엑수시아의 크기(얼마나 큰 기적을 청할 수 있는가), 돈으로 못 사는 것은 응답 여부. 그러면 확률형에 서사적 정당성이 생긴다. 다만 그 순간 “갚을 수 없는 빚”이 결제창의 수사가 된다. 세계를 배신하는 길이므로 경계할 것.
지금 MMO의 자동전투가 얕은 것은 기술이나 UX 때문이 아니라 BM 때문이다. 자동전투가 실력의 영역이 되는 순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생기고, 페이투윈 구조에서 그것은 매출 저해다. 못 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선례는 있다. 파이널 판타지 XII의 감빗은 조건-행동 쌍을 우선순위로 배열하는 시스템이고, 그 조건들을 게임 내에서 돈 주고 산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의 택틱스도 같은 계열이며, 오토체스·TFT는 아예 “세팅하고 구경하는” 구조로 성공했다.
능력을 파는 것이 아니라 지침의 효율을 판다.
상황 · 대상 · 판정 · 대응 네 축을 전부 상품화할 수 있다. 남은 HP를 체크하는 기능이 없어도 지침은 짤 수 있지만, 그 기능을 산 사람은 더 풍부한 지침을 짤 수 있다.
| 내용 | |
|---|---|
| 강점 ① | 과금과 숙련이 곱셈 관계가 된다. 돈이 실력을 대체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정교함의 상한을 올린다. 지침을 못 짜면 좋은 조건을 사도 소용없다 |
| 강점 ② | 상품이 무한하다. 능력치는 인플레이션이 오지만 조건은 아니다. 조건이 늘어난다고 데미지가 오르지 않으므로 밸런스를 덜 깨면서 계속 팔 수 있다 |
| 강점 ③ | 소비가 눈에 보인다. 남의 자동전투가 정교하게 돌아가는 것이 곧 과시가 된다. 리니지식 과시 소비와 같은 심리인데 덜 천박하다 |
| 위험 ① | 최소 세팅이 생기면 끝난다. 레이드 파티가 “HP 체크 없으면 안 받음”이라고 하는 순간 편의 과금이 아니라 입장료가 된다. 핵심 조건은 무료로 열고 특이·편의 조건만 팔 것 |
| 위험 ② | PK 조건 판매는 자동 약탈 봇을 파는 것에 가깝다. 다만 레이드 중심으로 가면 이 문제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
이 세계의 적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힘은 위임받은 것이다. 레이드는 여럿이 위임받은 힘을 합쳐 절대적인 것에 맞서는 구조이고, PvP는 인간끼리 싸우는 것이다. 빚을 진 자들끼리 싸우는 것보다 갚을 수 없는 상대와 맞서는 쪽이 이 세계에 맞는다.
힘이 믿음에 비례한다면, 전투가 길어질수록 믿음이 흔들리고 기적이 내리지 않는다. 후반부에 능력이 불안정해지는 레이드가 된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 가라앉는 장면이 그대로 시스템이 된다 마 14:28–31. 그러면 지침은 이렇게 짜인다 — “믿음이 40 이하로 떨어지면 청하지 말고 물러나라.”
다크소울식 긴장이 자동전투 안에서 성립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국내 MMO에서 시도된 기억이 없는 자리.
| 게임 | 가져올 것 |
|---|---|
| 다크소울류 | 판정하지 않는 서사.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 아이템 설명문으로만 흘린다. 무엇이 진실인지 끝내 확정하지 않는다 — 우리가 세운 제약 그 자체 |
| 다키스트 던전 | 성공해도 망가진다. 영웅이 소모품이고 스트레스와 광기가 쌓인다. 그리고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있다 |
| 파이널 판타지 XII | 감빗. 지침 설계 자체가 플레이가 되고, 조건을 구매한다 |
| 비너스 앤 브레이브즈 | 진형 기반 전투, 그리고 세대교체. 인물이 늙어 물러나고 후손이 들어온다 — 열두 제자가 하나씩 사라지고 이름 없는 자만 남는 세계와 어울린다 |
제출본에서 해결된 것 — 네 태도의 명칭(갚으려는 자 / 그냥 받은 자 / 확인하려는 자 / 떠난 자), 사건의 선택(성전 파괴), 비밀을 진 자의 처리(특정하지 않음). 아래는 제출본 이후에도 남는다.